가을이 만연한 9월의 끝자락, 프랑스 파리에서마흔세번째 레터를 쓰고 있는 박예진 에디터입니다. Apple TV 자체 제작 시리즈이자 조셉 고든 래빗이 직접 쓰고 출연한 <미스터 코먼>은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인 주인공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질문은 이내 선생님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선생님은요?” 선생님의 눈빛에 당혹감과 불안함이 감돕니다. 진실을 말할 수 없나 보군요.
센강을 따라 걷다가 본 노을
이곳에서 처음 만난 이에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프랑스로 왔다는 사실을 말하면 그들은 종종 눈을 빛내며 “너 진짜 용기 있고 대단하다!”라는 칭찬을 돌려줍니다. 요구하지 않은 반응에 눈빛이 흔들릴 때면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어서 “운이 좋았지”라고 무마하곤 합니다.
필연은 믿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인 운과 우연은 믿는 편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무너질 것 같을 때면 우연이 겹쳐 운이 무척 좋은 날이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역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도착하고, 오랜만에 듣게 된 음악이 흥을 돋우고, 건널목에 서면 신호등이 바로 바뀌고, 새롭게 시도한 가게의 음식이 맛있을 때, 동료의시답잖은농담에 웃었을 때,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쳐서 하늘이 맑게 개였을 때.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운이 좋았나요?
박예진 에디터
소란하고 분주한 마음을 씻어내기에 좋은
음악, 영상, 사물, 장소를 소개합니다.
요리책 『SIMPLE』을 보고 만든 구운 포도요리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요리해 먹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모처럼 요리책을 구입했습니다. 요리사 Ottolenghi의 『SIMPLE』이라는 책인데요, 책 이름이 말해주듯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부터 조금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근사한 한 끼를 만들어주는 레시피까지 다양하게 담겨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요리 중에서 제가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음식은 구운 포도에 곁들인 부라타 치즈입니다. 다른 메인에 곁들여도 좋고, 와인안주로도 그만이더군요. 그리고 정말 간단해요. 평소와 다른 요리를 하면서 레시피에 적합한 채소를 구입하기 위해 슈퍼마켓 대신 주말에 열리는 장터에 처음 가보기도 했습니다. 그곳 상인들에게 레시피에 적합한 감자와 호박 등 야채와, 향신료를 추천받기도 했어요.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즐겁고 건강한 취미가 생긴 것 같아 무척 뿌듯합니다.
독일에서 아이들이나 (심지어) 어른들도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놀 때 “칭챙총”이라고 말합니다. 애들이 무지하기에 혹은 무지한 어른들한테 배워서 이게 만연해있다고 생각하고, 그들 대부분이 인종차별적으로 칭챙총을 쓴 게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칭챙총” 하며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내가 왜 다른 나라에 와서 이런 걸 듣고 겪어야 하나 어느 순간 화가 뻗쳐 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라온 독일인, 이 사회에 화를 품게 되네요. 최근에 저는 독일의 유치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순간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차분해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요즈음, 아이에 관해 많이 생각한다. 아이를 가질 것인가,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가. 생각은 곧 소망에 가까워지고 있다. 몇 년 안에는 임신을 준비하고 싶다. 그렇기에 ‘딩크로 사는 투룸 여성들’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보내는 일상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대화도 재미있어서 그 무리에 껴서 동조하거나 농담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딩크족’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걸 알려준 기사였다. 그저 다른 선택을 한 것뿐.
투룸 에디터 정혜원
프랑스 거주민이면서 전자 음악을 좋아하거나 기꺼이 좋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목할만한 페스티벌! 무척 흥미로운 글이었고, 중간중간 새로운 DJ들의 믹스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너무 좋은걸? 내년에는 꼭 가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