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막 정착해 유독 바쁜 해를 맞았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때가 정말 그 절정이었다. 코로나 시국인 와중에, 두 번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석사 졸업논문을 쓰고, 박사과정 지원을 준비하고, 이민 준비도 해내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와중에 어째서인지 이민 준비만은 손쉽게 느껴졌다. 이미 유학이나 교환학생 등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랬는지, 새 나라에서 둥지를 트는 일이 처음엔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파트너와 연애하던 시절 자주 들렀던 나라이자 도시기에, 나는 잘 해내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큰 오만이었다.
향수병을 느끼던 시절 마주친 투룸매거진과의 인연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내서였을까, 네덜란드에 오자마자 건강이 악화되었고, 지병을 두 개나 얻고 말았다. 인생 처음으로 입원도 해보고, 매일 먹는 약이 늘어가고, 막 시작한 박사과정은 병가를 내고 쉬어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육체와 함께 정신도 덩달아 약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으로 향수병에 걸렸다. 팝송만 듣던 내가 K-POP을 찾아 듣고, 집에서 김치도 담가 먹기 시작하고, 한인 단톡방에도 참여해 보았다.
한국이 그리워 하루하루가 지독하게 느껴지던 타이밍에 우연히 투룸매거진을 마주쳤다.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계신 박사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독자기고 모집 공지를 발견한 나는 홀린 듯이 구글 설문지를 작성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쓴 답이 채택되어 투룸매거진 19호에 수록된 기사 <척척박사님은 아니지만...>에 내 이야기가 처음으로 실렸다. 나라도 다르고 전공도 달랐지만 다른 박사님들의 이야기를 투룸을 통해 전해 들으며, 마음 깊이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