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다. 투룸매거진 팀에 에디터로 합류한 지 어느덧 2년, 우리가 화면 속에서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던 시기가 2021년 10월 이 맘 때였던가. 파리에서는 락다운이 풀리고 점차 활기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고 화면 속 우리의 얼굴에는 새로운 시도를 향한 낯선 기대감이 감돌았다.
어느새 타인에게 ‘에디터’라는 직함으로 소개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었고 무엇을 쓸지 보다는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는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도 글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곧이어 내가 필연적으로 말하게 될 것, 마침내 타인과 나누고 싶은 것. 글이 향하는 곳이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우리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향하게 됐을 때 간절히 원했던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15호 <파리 공원 관찰기>
2022년 3월호에 실렸던 사진 에세이 <파리 공원 관찰기>는 공원이라는 개방적인 공공 시설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구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파리에 온지 1년 반 정도가 되었을 무렵 아직도 도시에 이질감을 받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공원은 나에게 모든 생각과 불안이 잠시 멈춰질 수 있는 도피처의 의미로 다가왔다. 2023년 10월, 현재의 내게도 공원은 유일하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숨통이 트이는 장소이다. 우연인지 이끌림 인지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공원의 근처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꽤나 재밌다.
20호 독자 참여 코너
<책을 펼치면 – 해외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책>
대부분의 독자 참여 코너는 사소한 궁금증에서 주제를 찾는 편이다. 한 번은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다가 한국어 책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머릿속에 명쾌하게 활자가 박히던 느낌을 잊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타지에서의 흐릿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타인의 소중한 물건에 대해 좋아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들을 때 과거를 넘어서 현재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구나 느끼게 된다. 어떤 책에는 함께한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고, 어떤 책에는 각자 찾고자 하는 질문의 답이 담겨있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독자 참여 코너였다.
21호 <Paris Jazz Night
가을밤, 재즈를 즐길 수 있는 파리의 장소>
<Paris Jazz Night>은 전형적인 추천 콘텐츠의 일환으로 주요 관심사인 음악과 유일하게 파리에서 거주하는 투룸 팀 에디터로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계절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가을밤에는 재즈를 들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주관에 가까웠다. 장소와 페스티벌에 대한 선정 기준은 규모, 퀄리티, 개성,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Jazz à la Villette는 워낙 유명하고, 평소 재즈바를 갈 때면 Sunset Sunside에서 종종 공연을 보곤 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소통하는 감각을 다시금 일깨우고 싶을 때 방문해 보고는 한다. 추천 기사를 작성할 때면 개인적인 취향의 데이터 베이스에서 고르고 또 골라 선별한 것들만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기쁨과 동시에 결과를 내보일 때면 긴장된다.
23호 투룸 테마 토크
<프랑스 영화학도들의 ‘헤어질 결심’ 리뷰>
투룸 테마 토크는 1대 다 인터뷰 형식으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관련 업계에서 공부, 일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온라인 화상 통화로 진행한다. 투룸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두 번째로 진행했던 투룸 테마 토크였는데, 여러 사람과 한 주제를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가장 선호하는 코너다. 물론 원고를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제일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가 현실의 우리의 이야기에 와닿을 때, 이내 우리가 그 안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음을 알게 될 때, 에디터로서 일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지점을 깨달았던 것 같다.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테마 토크에서는 중심이 되는 이방인 ‘송서래’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각자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짚어내고 해석을 공유하는 경험이 소중했다.
29호 인터뷰 <욕심을 내지 않는 노련함
할리우드 특수 의상 제작자 바네사 리>
인터뷰는 사실 할 때마다 떨린다. 1대 1 대화에 비교적 강한 편이지만 인터뷰이를 만날 때면 여전히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한쪽에는 미리 작성한 인터뷰 질문지를 켠 채 화상 회의에 접속한다. 29호에 실렸던 할리우드 특수 의상 제작자 바네사 리 님과 함께 했던 인터뷰는 어떻게 보면, 인터뷰어로서 내가 가져야 할 자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 전환점에 가까웠다. 모든 인터뷰에서 항상 새로운 것들을 배웠지만 심지가 곧은 사람이 수천 번, 어쩌면 수만 번의 경험을 인고하면 이렇게 단단하지만 유연해질 수 있구나 싶었다. 이 인터뷰를 통해 한 직업에서 시니어가 되고 리더 급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프로페셔널함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써졌다.
“타인의 삶의 일부를 듣는 일은 역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차유진 편집장과 개인 회의를 하던 중에 나온 말이었다.
모두가 가진 이야기는 다르다. 당신이 지나온 삶의 궤적이 나의 것과 겹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완전히 같은 건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타인을 향한 자그마한 궁금함이 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투룸매거진 에디터로서 머나먼 어딘가에 사는 당신을 만나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렇게 글로 이어진 나와 당신이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에디터의 취향
투룸매거진 최신호인 34호에 수록된
박예진 에디터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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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룸매거진 34호 인터뷰
미술을 향한 정확한 애정
뉴욕 MoMA 기금 모금 리서처, 이지현
미국 뉴욕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MoMA)에서 기금 모금(Fundraising) 리서처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정보의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1시간 남짓의 인터뷰 동안 오간 수많은 참조 링크가 정확성, 형평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리서처 다운 삶의 한 편을 보여준다. 뉴욕에서 미술관 후원자 리서처로 살아가는 일, 그 바탕에는 미술과 전시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