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수 식 삶
"비건 말고. 미지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여행하는 사람. 여행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요."
그녀의 여행지도는 남들보다 컸다. 그러나 굳이 목적지와 행로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는 아주 정확한 나침반이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지수는 미지에서 얻는 새로운 경험이 좋았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 좋았고, 새로운 일터가 좋았고, 캐나다, 호주, 영국의 각기 다른 영어 악센트를 비교하고 배우는 것도 좋았다. 하고 싶은 건 꼭 해내지만 하고 싶은 게 당장 안된다고 들끓지는 않는다고 했다. 인내할 수 있는 건 돌아가는 길 마저 새로운 경험으로 여기고 즐길 줄 알기 때문이리라.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근무지가 1존에 있었거든요. 저는 일부러 4존에 숙소를 잡았어요. 4존과 1존 사이를 오고 가는 지하철 티켓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저의 생활 반경이 더 넓어진다는 걸 뜻하니까요."
런던의 살인적인 생활비와 긴 출퇴근 시간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런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미지수는 느릿느릿 육로를 택했다. 가는 길에 명상센터가 보이면 그곳에 들어가 며칠이고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녀는 행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거주지도, 소유물도, 인생의 계획도 없이 방랑하면서도 누구보다 여유로웠다. 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계획이 없다는 건 그만큼 빈 공간을 많이 만들어 둔다는 거야. 빈 공간은 더 큰 기회와 상상도 못 했던 좋은 일로 채워지지."
그들의 말대로 지수는 계획 없이, 기대 없이, 목표 없이 여정을 이어 나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상상도 못 했던 좋은 일이 일어났다. 파트너를 만난 것이었다. 독일에서였다. 그와의 만남으로 그녀는 독일로 이주했고 지금의 동남아 장기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