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박예진 에디터의 글을 즐겨 읽고 기획 미팅에서 머리를 맞대본 동료로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지성과 드넓은 관심사였다. 예진은 누군가가 독특한 영화나 흥미로운 인물, 신간을 마치 힘겹게 찾아낸 진주조개를 꺼내듯 대화 위에 올릴 때마다 어김없이 ‘어! 그거 들어봤어요.’, ‘맞아요. 저도 그 영화 보려고 표 예매했어요.’ 라며 반가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주제에도, 어떤 인물과도 취향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누군가가 랜덤하게 던진 관심사를 사뿐하게 받아 들고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 예진 덕분에 투룸 기획 미팅은 종종 알쓸신잡 못지않게 지식과 탄성으로 꽉 찬다.
그녀가 기고하는 글도 마찬가지다. 독자참여코너, 테마토크, 문화체험기, 여행기, 인터뷰, 그리고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플레이리스트까지 고루 써낼 수 있는 투룸 에디터팀의 유일무이한 ‘올라운더'가 아니던가. 다양한 형식과 글감에 유연하게 도전하면서도, 심지어 독자들의 사연을 옮겨 담느라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지 않을 때에도, 예진의 글 속에는 독자를 설레게 하는 특유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은 마치 호기심, 다정함, 사색이 트리오를 이루며 연주하는 재즈 음악과 같다.
박예진 에디터가 진행한 투룸 테마토크 기사
각각 투룸매거진 18호, 23호에 실렸다.
이 정도의 지적 호기심과 내공이라면 아주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것일 거라 짐작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자나 교수의 길을 꿈꾸지 않았을까? ‘파리지앵’이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진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고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즈음에 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뭔가 하고 싶은 게 명확히 없었거든요. 포부가 없을 바에야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택하자 싶었죠. 부모님한테 짐이 되느니 돈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진은 어릴 적부터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는 아이였다. 당시 스스로 결정을 굳히지 않고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분명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 그때 가서 결정을 해도 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러나 예진에게는 그녀의 결심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계셨다. 그녀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19살 때부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재무와 회계를 담당하는 팀 소속이었다.
“괜찮은 근무처였어요. 30년씩 근속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도 얼른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요. 음, 어릴 때 일찍 안정을 추구하는 커리어 선택을 경험해 본 게 저에게는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랑은 안 맞는 선택이라는 걸 빨리 깨닫게 해 줬으니까요. 회사에서 희망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던 게 저의 다음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단조로운 업무와 시계추 같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 예진은 자신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탐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생 시절 방송 영상 동아리에서 피디를 맡아 기획한 영상제였다. 기획부터 제작, 편집까지 내 손으로 다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과 그것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기획이 재미있다는 걸 최초로 경험해 본 순간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가봤던 락 페스티벌도 떠올랐다. 어느 무더웠던 날 친구와 찾은 지산 락 페스티벌이었다. 숨 막히는 더위에 녹초가 되어있다가도 공연이 시작할 때면 기운이 솟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흥분이었다. 그녀에게 희망과 미래란 그렇게 구체적인 과거 순간들이었다. 오감의 전율과 강렬한 소리와 시각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대'가 마음속에 타투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계속 따라가야 할 무엇임을 직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것들로 제가 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상상을 해보더라도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금방 접곤 했죠.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하다 보니 이런저런 경험도 함께 쌓여나가더라고요. 입체적인 경험들이 모여 ‘이거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자신감으로 치환되고요.”
박예진 에디터의 취향이 드러나는 기사들
각각 투룸매거진 21호, 17호에 실렸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마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그것이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마음을 놓지 않는 한 그로부터 야기되는 경험은 쌓이고 쌓여 복리처럼 불어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대한 무엇으로 묵직하게 우리 앞에 우뚝 선다. 그게 언제인가가 개인마다 다를 뿐.
대학을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던 10대의 예진처럼 20대의 예진은 또 한 번 당차게 부모님께 통보했다. 나는 예술과 함께 하겠노라고. 파리에 가겠노라고. 회사에서 일한 돈을 차곡차곡 모아 유학자금을 마련했고 퇴근 후에는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렇게 준비한 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 예진은 프랑스로 떠났다.
여러 해가 흘러 예진은 이제 자신이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원 앞에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가 소속된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에서 예술가들의 공연 준비를 위한 코디네이션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프랑스로 오기 전부터 좋아하던 음악 공연 기획을 석사 전공으로 시작했다. 좋아함을 추구할 때 만들어내는 복리효과는 그러하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워라밸' 속 ‘라' 한 글자에 속하는 무엇이 아니라 삶의 전체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마치 등대와 같아서 우리가 알아차리든 알아차리지 않든 늘 거기에 서있다. 어둠 속에서 막막함을 느낄 때야 비로소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고 길을 안내한다. 예진에게 투룸매거진은 남을 위해 글을 쓰는 첫 시도였다고 했다.(놀랍지 않은가?) 덕분에 예진의 등대 불빛은 이제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까지 밝혀준다.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떠올리게 하고, 막연하게 궁금해하던 것을 해소시켜 준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렇게 여전히 복리처럼 불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