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취해 살았던 돈키호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기를 시도했던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꿈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프리다 칼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꿈과 정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라틴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이들에게는 숨 막히게 몽환적이고 정열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겉으로는 매우 달라 보였던 우리 세 그룹을 하나의 동기로, 스페인어라는 '언어를 따라간' 다채로운 청년들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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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찾은 대륙이 신대륙이 아니라 향신료의 고향 인도라고 믿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본인이 만든 기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현실을 왜곡해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이룬 성취가 암시하는 드넓은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평평한 바다 끝 절벽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라 배 위에서 보낸 동료들뿐 아니라 개인 귀중품까지 팔아가며 탐험을 후원해 준 스페인 여왕이 콜럼버스에게 거는 기대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가 되어 그의 시야를 흐렸던 것은 아닐까.
대학을 졸업해 제대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기대는 스페인어라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우리의 마음을 내내 짓눌렀다. "외국어 공부해서 뭐 먹고사냐"라는 그 냉소적인 질문은 단지 어느 고지식한 친척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많은 어른들의 질문, 당시 한국 사회의 질문, 그리고 그것을 내재화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외대 캠퍼스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겪다가 자아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시작했고, 모든 외국어 전공 학생들에게 상경계열을 부전공도 아닌 이중전공으로 (본전공과 똑같은 양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 택할 것을 강권했다. 인문학이 냉소적인 사회의 휴식처이자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는 새로운 열쇠로 재조명받기 직전의 시대였다.
마침내 취업 시즌이 가까워 오고 그 질문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신대륙이었던 스페인어가 인생을 확장시키는 열린 땅이 아니라, 취업이라는 목적지로 넘어가기에 꽤 불편한 울퉁불퉁 황무지 섬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외국어 특기전형으로 대기업의 해외무역부서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목표였고, 전공과 전혀 무관한 전형으로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은 더 큰 축하를 받았다. 나 역시 졸업을 하자마자 스페인어를 금방 내려놓았다. "그래 역시 언어로는 먹고살 수 없어. 내가 뭐 언어에 대단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고 자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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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은, 나는 한 번도 '스페인어'의 신대륙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취업의 문턱을 넘고, 공교롭게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에 이민 와 정착하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언어가 사고관을 형성한다'는 말은 굳이 죽은 학자들의 가설 (사피어-워프 가설)을 빌려오지 않아도 스페인어를 만난 이후의 나의 삶이 입증하고 있었다. 마치 가속도가 붙듯, 스페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3대의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닿을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외계인 같던 교포친구들과 조용히 담대한 꿈을 꾸던 동기들과 더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모험적인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겁 많고 부끄럼 많던 해외여행 무경험자는 전공 도중 혈혈단신으로 멕시코 시티 한가운데로 유학을 떠났고, 모험에 맛이 들려버려서는 유학을 끝내자마자 휴학신청을 하고선 관광비자만 들고 뉴욕에 가서 살았다. 마음잡고 두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도 했다. 그것은 단지 어느 외국 땅을 밟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호기심이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아예 미국에 정착을 해버렸다. 돈키호테처럼 꿈꿨지만 달리처럼 꿈을 돈으로 만들 궁리도 열심히 했다.
나는 이와 같은 내적 외적 변화를 동기들도 겪었으리라 믿는다. 스페인어는 나를, 그리고 동기들을 "글로벌 몽상가"로 길러주었다. 유난히도 대학 동기들을 만날 때면 꿈 얘기를 많이 한다. 현실의 거센 바람 앞에 말라버린 꿈을 함께 애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운 말랑말랑한 꿈에 대한 설렘을 나눈다. 서로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데도 그렇게 금방 시간과 공간의 갭을 메운다. 나는 그들의 순수함을 사랑하고, 그들을 통해 나 또한 내면의 순수함을 재발견한다.
이제 일상에서도 일에서도 스페인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스페인어가 가르쳐준 모험심과 꿈꾸는 용기는 내 삶의 태도와 의사결정 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오히려 영어보다도 더 드넓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 넓은 관점 위에서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배우며 겸손해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다양성을 관통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와 행동양식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과 깨달음이 오늘날 사람들의 욕구와 심리반응을 연구하는 사용자 경험 리서처라는 직업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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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든, 영어든, 독일어든 그 어떤 외국어가 되었든 간에, 언어는 당신의 마음에 닿는 순간 새로운 길을 선사한다. 언어는 특정 사회와 문화가 함축된 알고리즘이다.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언어의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눈과 귀, 입으로 체화해 내는 그 일련의 활동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운명적인 만남과 기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언어는 처음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이미 당신의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모든 이들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20대 초반에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시기에 놓인 친구들은 더 천천히, 뜨거운 가슴으로 언어를 배웠으면 좋겠다. 그 언어를 멋지게 구사하는 원어민 배우나 예술가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져보고,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여행지를 꿈꿔보고, 그 여행지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정말 상상하는 대로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들을 그에게 하고 싶을지 적어보자.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단어와 문법들을 찾아보자.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배운 첫 문장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북극성이 되어 당신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