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여느 때와 같이 월 정기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스포티파이 공유 플레이스트를 만들었던 기억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65일의 25%가량을 음악을 듣는 데 할애하는 나에게 음악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은 일정 이상의 친밀도를 형성하기 위해 거치는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행위이고, 당신을 알 준비가 되었고, 나 또한 내가 아끼는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다는 사인이기도 하다.
모두의 흔쾌한 동의와 함께 만들어진 투룸 팀의 플레이리스트는 어느새 나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곡을 알게 되는 것만큼이나 팀원들의 음악 취향을 알아가는 일은 무척 설렜다. 투룸 팀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대략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각 팀원의 선곡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을 하나씩 선정해 봤다.
1.
정혜원 에디터의 선곡
Spacehog - In the meantime
전주를 듣자마자 이 곡은 더 이상 단순히 노동요가 아니었다. 묵직하면서 클래식한 기타 사운드와 허밍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가 귓가에 울린 순간 ‘좋아하는 노래’에 추가하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지금껏 알아 온 정혜원 에디터의 차분한 모습이 정통 락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에, 스스로의 편협한 사고가 유쾌하고 활기차게 부서졌고 이내 정체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혜원 에디터가 선곡한 노래를 듣다 보면 꾸준하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의 넓고 깊은 취향을 마주하게 된다.
특유의 밝고 화사한 에너지가 에디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살았던 감정을 항상 일깨워주는 선곡에서 가끔은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주원 에디터와 대화하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과거의 아름다운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이따금 타인의 취향이 타인을 닮은 경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주원 에디터가 거주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햇빛과 언덕, 노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경험해보지 않은 시공간으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주원 에디터의 에너지를 가장 잘 연상시키는 선곡이다.
플레이리스트 속을 유영하다 세련된 비트가 들리면 대체로 그건 원진 디자이너가 추가한 곡이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각 개성이 뚜렷한 멜로디 라인이 그와 나눴던 대화, 그가 담당한 인스타그램 콘텐츠들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했다. 음악 취향을 공유하면서 가장 신기한 순간은 취향이 완전히 같은 이를 만나게 되는 때보다 서로 비슷한 아티스트를 좋아하지만 자주 듣는 곡이 다를 때이다. 덕분에 알고 있던 사실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뒤늦게 수림 디자이너를 공유 플레이리스트에 초대하고 난 뒤, The Cool Kids라는 이름의 다분히 쿨한 아티스트의 곡이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재생을 하자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되는 힙합 곡이 반가워 미소를 짓게 되었다. 커피 타임에 어울리는 기존의 차분했던 플레이리스트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선택이 맘에 들어서도 있지만 유진 에디터가 수림 디자이너를 묘사했던 코멘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수림 디자이너와 회의를 같이 한 횟수가 많지 않아, “상상한 것 이상으로 재밌다”는 차유진 에디터의 말을 들으며 그를 그려봤었다. 그동안 봐온 그의 디자인과 맞물리며 모든 설명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투룸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마음에 쏙 드는 재즈의 향이 물씬 풍기거나 적당히 리드미컬한 곡이 흘러나오면 언제나 차유진 에디터가 추가한 곡이었다. 차분한 편이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템포,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 라인, 귀를 기울여보면 누구의 취향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알아챔의 지점에 나의 음악 취향과의 유사성 또한 언급하고 싶다.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인, 익숙한 취향의 발견이었다. 투룸 팀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후 진행한 회의에서 우리는 서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스스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곡을 소개하자니 조금 낯부끄럽다. 굳이 한 곡을 정하자면 지금 내 취향의 기반이 된 프랑스 아티스트 Josef Salvat의 Open Season을 고르고 싶은데, 영어버전과 프랑스 버전, 다양한 리믹스 버전이 있는 곡이다. 모든 버전마다 각자의 매력이 다르다. 노래의 영화적인 요소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눈앞에 여러 장면을 선명하게 그리고 싶을 때마다, 삶에 변주를 주고 싶을 때마다 꾸준하게 찾고 있다.
초반에는 확실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였다. 고민해서 고른 흔적이 드러나는 각각의 색이 어느새 자연스레 하나의 지점으로 모인다. 우리가 모은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취향의 곡이 아니다. 함께 나눈 시간 동안 쌓인 신뢰, 그리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며 하나로 조화를 이룬 투룸 팀만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p.s. 미지수 에디터와 김은지 에디터, 김현지 디자이너의 곡은 이번엔 아쉽게도 싣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