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발행된 투룸매거진 18호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기사는 아무래도 영화인 최성재의 이야기를 담은 <최성재와 샤론 최 사이>라는 인터뷰 기사였다. 이 기사가 나온 이후, 주변으로부터 샤론 최를 어떻게 섭외했냐며 물어보는 연락을 꽤 많이 받았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했을 정도다. (물론 개인 정보라 정중히 거절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던 최성재의 섭외 스토리는 올해 초 정혜원 에디터와 식사를 했던 그의 베를린 집 소박한 부엌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진 님은 누구를 투룸매거진 인터뷰에 꼭 초대하고 싶어요?”
혜원 에디터의 질문을 들으니 단번에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저는 언젠가 꼭 샤론 최 님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사실 샤론 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미국에 살고 있는 영화 전문 통역사라고 오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작년 봄, 한창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유행했을 때 우연히 샤론 최의 영화 이야기를 들은 것을 계기로 그가 사실은 영화 전문 통역사가 아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를 무엇보다 사랑하며, 언젠가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냥 궁금해요. 그저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언젠가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로 일하면서 의도치 않게 통역사로 알려졌잖아요. 그동안 나름대로 인생의 큰 변화를 겪었을 것 같기도 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샤론 최의 연락처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섭외를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그에게 연락할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원고 마감이 한창이던 날 한숨 돌리며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짤막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가 투룸매거진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했다는 알림이었다. 식사중이니 일단 잠금화면에 뜬 간략한 알림 화면만 확인하고는 다시 핸드폰을 뒤집어 두고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뒤통수에 강렬한 섬광이 스치는 느낌이 났다. ‘잠깐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다시 핸드폰을 들고 알림의 주인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그렇게 찾던 샤론 최의 계정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와 여러 번 사소하게 연결됐다. 너무나 고맙게도 그가 투룸매거진을 구독했고, 인스타 디엠으로 문의를 하면서 응원의 말도 남겨주었다. 언젠가 인터뷰해보고 싶었던 그와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날 이후로 증폭된 궁금증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그가 했던 몇 안 되는 인터뷰 기사들과 그가 Variety지에 썼던 글을 꼼꼼하게 읽어봤다. 인터뷰 기사 중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늘 최성재로 불리다가 사람들이 나를 샤론 최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는 부분. 샤론 최로 알려져 있는 그는 사실 최성재라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속의 그는 샤론 최라는 이름보다 최성재로 불리길 바라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나는 용기를 내어 새 메일 창을 열고 투룸매거진 구독 데이터에 있던 그의 이메일 주소를 복사해 받는 사람의 메일 주소에 붙여 넣기를 하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최성재 님,
지난번 인스타그램 디엠을 잠시 주고받았던 투룸매거진 차유진입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얼마 전 제가 살고 있는 베를린에 머물고 계신 걸 보고 참 반가웠어요. 이곳에서 보내는, 혹은 보낸 시간이 즐거우셨길 바라요.
한 달 전 인스타그램으로 투룸매거진 계정을 팔로우해주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건 최성재 님이 알려진 분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전에 함께 일하는 동료 에디터와 식사를 하며 나눴던 대화 때문이었어요.
"유진 님은 투룸매거진에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예요?"
"음... 저는 제가 제일 궁금한 사람이요. 그중에서도 샤론 최 님이 가장 궁금해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 두 사람은 성재 님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어요. 조금 아쉬웠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어떻게든 닿지 않겠나... 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투룸 인스타그램을 성재님이 팔로우해주시고 투룸매거진을 구독해주시기까지 한 걸 보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척 기뻤고요.
조금 서론이 길어졌지만, 이 이야기를 꼭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
…
두 번째 방인 미국에 살았던 시간이 어땠는지, 어떤 도전이 있었는지, 어떤 경험과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어떤 영화 작업을 하고 계신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용기 내어 이메일을 씁니다. 비대면 인터뷰(1시간 정도), 혹은 이메일 서면 인터뷰로 저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좋고, 깊이 고민해보시고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시간 내어 긴 메일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남은 한 주도 계신 곳에서 즐겁고 평온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베를린에서
차유진 드림
내가 주절주절 써내려간 메일에 그는 며칠 뒤 “인터뷰 요청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인터뷰 좋아요.”라며 인터뷰 제안에 화답했다.
쌀쌀한 바람이 포근한 봄바람으로 바뀌어가던 4월, 영화인 최성재와 나는 줌에서 만나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그는 가끔씩 시간을 두고 조용히 고민하다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아팠고, 안도하게 했고,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웃기도 했다. 마치 영화가 너무너무 좋아서 그 거대한 영화라는 세계에 용기를 내어 풍덩 몸을 던진 사람 같았다.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꼭 쥔채로 말이다.
영화인이 아닌 통역사로 알려지면서 내적으로 혼란을 겪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셰런-샤론 최- 최성재 사이를 오고가는 이야기까지… 그 모든 서사들이 내 마음에 적지않은 파동을 만들어 냈다. 투룸매거진 18호에 수록된 성재님의 인터뷰를 읽은 모든 독자님들도 같은 마음이었기를 바란다.
샤론 최와 최성재 사이를 오가다 셰런, 최성재, 샤론 최 모두가 결국은 자신의 삶을 이루는 페르소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런 페르소나들이 여러 개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투룸매거진을 제작하면서 많은 인연들과 촘촘하게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떨어진 거리나 친분의 여부와 상관없이 투룸매거진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따뜻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공간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