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룸매거진에 조인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진 편집장의 담백한 팀 운영 방식이었다. 그녀는 질서와 규율의 나라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답게 매거진 기획에 규칙적인 리듬과 확고한 계획을 부여하면서도, 한국인의 정과 융통성을 잊지 않으려는 듯 매번의 만남에 유연함을 가미한다. 예컨대 매달 마지막 주 혹은 첫째 주에 진행되는 콘텐츠 기획회의에는 운영진들이 위치한 세 개의 타임존이 미리 고려된 미팅 시작 시각을 고정해 놓지만 종료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는다. 참여 인원의 숫자나 그날의 에너지, 기획 아이디어의 난이도에 따라서 보통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까지도 이어진다. 여느 회사에서였다면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났을 수도 있을 미팅일지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나에게 이 기획회의는 아침 10시에 시작된다. 아침식사 후 간단한 집안 청소와 산책을 한 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나면 딱 알맞은 타이밍이다. ‘주원 님, 참 상쾌해 보이네요’라는 인사를 종종 받는데, 그건 내가 인간 비타민 같은 외모를 가져서라기 보다는 시차로 인한 효과일 뿐이다. 나에게 그 코멘트를 날리는 이들은 점심을 막 하고 낮잠이 오기 시작하는 뉴욕의 1시와 하루의 묵직한 일정을 이제 끝낸 베를린과 파리의 저녁 7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적인 시차를 조여주는 것은 유진 편집장의 유쾌한 오프닝 썰이다. 회의 때마다 무수한 대화가 오고 가기 때문에 그녀가 정작 미팅 시작에 어떤 썰을 풀어놓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9시 58분에 접속하든 10시 1분에 접속하든 혹은 커피를 만드는 손이 더뎌 10시 5분에 접속하든 유진 편집장은 언제나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멤버들은 마치 여름밤 캠프파이어 주변에 모여드는 아이들처럼 줌의 사각 박스에 하나둘씩 나타나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느새 합창하듯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오랫동안 조용히 듣고 있던 멤버들마저도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풀어놓는다. 어떤 이야기는 ‘이방인’이라는 우리의 공통된 정체성에 닿아 마치 돌림노래라도 부르듯 변주된 일화와 유사한 감정을 차례로 꺼내게 한다. 반면 어떤 이야기는 화자에게는 당연한 일상일지언정 다른 국가와 문화권을 사는 청중들에게는 참으로 이색적인 일인지라 탄성 속에서 각자가 속한 문화를 다시금 견주어 보게 한다. 대화를 한참 나누고 있노라면 유진 편집장은 어느새 우리의 콘텐츠 아이디어 목록이 저장된 엑셀 파일을 꺼내고, 모래알에 묻힌 예쁜 조개를 골라 줍듯 아이디어를 담기 시작한다.
투룸매거진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온전한’ 이방인이 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이방인이라는 딱지를 떼려 발버둥 치듯 보내지 않던가. 오늘은 길거리의 낯선 이로부터 인종차별적 언사를 겪지 않기를, 이제는 관광객이 길을 물어올 정도로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현지인으로 보이기를, 내일은 회사와 학교에서 언어의 장벽 앞에 버벅거리지 않고 내가 가진 능력껏 나를 보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하지만 투룸매거진은, 그리고 투룸매거진을 만드는 나의 동료들은 하나의 거울이 되어 이방인으로 오롯이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비춘다. 그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생각보다 꽤 괜찮아 보인다.
이방인으로서 겪는 자연스러운 고뇌와 희망을 앓는 시간조차 아까워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이방인들의 평범한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를 쉽게 찾아보기 힘든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몸도 마음도 너무 바쁜 일이니까. 스스로에게 가하던 채찍을 내려놓고 펜을 들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특별한 의지나 정의감이라기보다는 이 수다의 시간 덕분이다. 뭐 그리 대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함께 감정과 경험과 꿈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 반짝임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매거진이라는 틀은 사실 그저 예쁜 핑계일 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방인 다운, 이방인들만 나눌 수 있는 수다를 더 많은 이방인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실어 보내는 ‘투룸 라운지' 뉴스레터가 바로 그 방증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 은밀한 수다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